김그림은 몸을 하나의 형태로 고정되지 않고 동식물과 사물의 형태로 변형되는 ‘이행하는 몸’ 으로 바라본다. 익숙한 장소와 관계를 벗어난 뒤 경험한 부유와 비소속의 감각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존재 사이를 넘나드는 상태를 탐구하며, 이를 흐르고 들러붙는 유화의 물성과 무화되는 경계로 표현한다.
Kim Grim views the body as a “transitional body”—one that is not fixed in a single form but continually transforms into the forms of plants, animals, and objects. Drawing on the sense of drifting and non-belonging she experienced after leaving familiar places and relationships, she explores states that move across the boundaries between different beings. She expresses these states through the fluid, adhesive materiality of oil paint and the dissolution of bound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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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회화는 경계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변형되는 ‘이행하는 몸’을 다룬다.
익숙한 장소와 관계를 벗어난 뒤 부유와 비소속의 감각을 경험하며, 나는 몸을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 다른 존재와의 접촉을 통해 끊임없이 변형될 수 있는 몸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화면 속 몸은 인간과 동식물, 사물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에게 침투하고 변형되는 ‘액화된 상태’로 나타난다. 서로의 경계가 유동하는 과정 속에서 파편들은 얽히고 뒤섞이며,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낯선 생명체의 형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이행의 과정은 유화의 물성으로 다룬다. 유화는 느린 건조 시간 속에서 서로 스며들고 들러붙으며 천천히 흐르고, 형태의 경계를 흐트러뜨린다. 흐르고 얽히는 표면 위로 반투명한 흔적이 겹겹이 쌓이며 선명한 해석은 유보되고, 형상의 경계는 계속해서 미끄러진다.
결국 나의 회화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끊임없이 얽히고 변형되며,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수렴하지 않는 생명체적 화면을 지향한다. 그 안에서 몸은 다른 존재의 흔적을 받아들이며 계속해서 다른 형태로 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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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aintings explore the “body in transition,” a body that continuously transforms as it moves across boundaries.
After leaving familiar places and relationships, I experienced a sense of drifting and non-belonging. This led me to see the body not as a complete and fixed entity, but as something that can continually transform through contact with other beings.
Within the paintings, bodies move across the boundaries between the human, the vegetal, the animal, and the object, penetrating and transforming one another in what I describe as a “liquefied state.” As these boundaries become fluid, fragments intertwine and merge, giving rise to unfamiliar life-like forms that resist being defined as any single thing.
I approach this process of transition through the material qualities of oil paint. Because of its slow drying time, oil paint seeps, adheres, and flows gradually, disrupting the boundaries of form. Translucent traces accumulate in layers across these flowing and entangled surfaces, suspending clear interpretation while the boundaries of the figures continue to shift and slip.
Ultimately, my paintings seek to create an organism-like pictorial field in which different beings continuously intertwine and transform without converging into a single, completed form. Within this field, the body absorbs traces of other beings and continues to transition into other fo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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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그림의 캔버스에는 형태를 알 수 없는 덩어리들이 자리한다. 그것들은 사물과 신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다. 화면 위 붓질은 덩어리 간의 경계를 허물고, 색은 스스로 번지며 천천히 스며든다. 이 유동적인 형체들은 스스로의 경계를 잃은 채, 외부와 맞닿은 순간마다 흡수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의 작업은 소속의 부재로 인한 ‘상실’, 즉 작가가 겪은 개인적인 감정으로부터 출발한다. 김그림은 작가노트에서 덩어리를 “소속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비정형적 형상”이라 말한다. 덩어리는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서로의 흔적을 받아들이며 만들어지는 하나의 현상이다. 분명한 형태로 표현되지 않는 이 응축된 형상은 감정이 머물렀다가 다시 흩어지는 자리이자, 서로 다른 감각이 맞닿아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통로로 기능한다.
자크 랑시에르는 『감성의 분할 Le partage du sensible』(2000)에서, 예술을 “무엇이 보이고 들릴 수 있는가를 규정하는 감각의 질서”로 설명한다. 김그림은 바로 이 질서에 속하지 못한덩어리들을 화면 위로 불러온다. 그의 회화는 의미의 명료함을 미루는 ‘지연’의 공간이며, 규정된 언어로 포착되지 않던 감정의 층위가 다른 리듬으로 작동하도록 유도하는 회화적 실험이다. 세계의 질서 바깥에서 부유하던 감정이 화면 위에서 자리를 얻는 순간, 이는 하나의 사건으로 변환된다.
〈동굴〉(2025)은 감정이 응집되는 장소이자 생명의 시작점처럼 다가온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덩어리들은 서로를 감싸며 새로운 생명체의 형태를 만들어간다. 곳곳에 번진 붉은색의 흔적과 혈관처럼 얽힌 형상은 감정이 표면으로 밀려나오는 장치가 된다. 반면 〈Aleph〉(2025)에서는 어둠 속에서 형성된 감정이 차가운 표면 위로 응축된다. 눈, 뼈, 얼굴과 같은 신체의 흔적이 드러나며, 감정은 분절된 신체의 단면처럼 드러난다. 작가는 감정을 완결된 형태로 재현하기보다, 파편화된 잔여들을 한 점에 모아 '알레프(Aleph)'로 수렴시켰다.1)) 이는 회화가 감정을 다시 쓰는 시각적 언어로 작동하는 장면이다.
“ 〈나무에서〉(2025)는 이전보다 훨씬 짙은 어둠으로 덮여 있고, 나무의 기둥 주변으로 스며드는 덩어리들은 감정이 나무의 신체 속으로 이식되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감정이 내부의 덩어리에서 벗어나 타자의 존재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동굴〉이 감정의 응집을, 〈Aleph〉가 그 응집의 파편을 보여주었다면, 〈나무에서〉는 감정이 어둠 속에서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어둠’은 김그림의 작업 전반을 감싸는 배경이기도 하다. 작가는 환한 낮보다 어두운 밤에서 형태가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러한 밤의 풍경은 감정을 숨기는 것이 아닌, 감정이 모습을 얻는 표면으로 기능한다. 그는 밤의 산책 중 마주친 것들—〈동굴〉의 고양이, 〈나무에서〉의 가로등, 〈일그러진〉의 집—을 화면에 불러온다. 이는 감정이 고립된 공간에 잠시 머물렀던 현실의 장면이다. 배경은 변하지 않지만, 그 속의 덩어리들은 시시각각 형태를 바꾸며 감정을 따라 하나의 집합체로 수렴된다.
〈일그러진〉(2025)과 〈토끼굴〉(2025)은 이러한 감정의 모습이 신체와 공간의 관계 속에서 뒤틀리는 장면이다. 새벽의 시간대에 머무는 〈일그러진〉의 덩어리는 심장의 형상을 닮아, 내부에서 이어지는 심장 박동처럼 감정의 리듬을 드러낸다. 〈토끼굴〉의 덩어리는 좁은 공간을 통과하는, 토끼와 닮은 신체의 움직임처럼 묘사된다. 신작 〈Untitle〉(2025)과 〈연기〉(2025)는 이전작업에서 반복되던 어둠을 벗어난다. 화면은 밝은 노란빛으로 채워지고, 세부적인 묘사는 지워지며, 덩어리의 윤곽은 강한 빛 속에서 희미해진다. 강렬한 빛을 마주할 때 시야가 잠시 소실되는 것처럼, 감정의 형태는 과도한 조도 속에서 흐려진다. 빛이 화면 전체를 잠식하는 순간, 감정은 더 이상 덩어리가 아닌 흐릿한 실루엣으로써 남게 된다.
이렇듯 김그림의 회화는 응집과 해체, 어둠과 빛, 명료함과 흐릿함이 교차할 때, 감각의 질서를 미세하게 가로지른다. 그의 화면은 어떤 결론을 제시하기보다, 감정이 나뉘고 다시 배치되는 과정을 따라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간다. 그의 덩어리들은 완결되지 않은 형태로 남아 서로를 수용하고, 감정은 언어로 닿지 않는 층위에서 생성된다. 이러한 감정의 움직임은 관람자에게도 ‘지연’의 시간으로 전이되어, 즉각적인 이해 대신 감각의 속도를 개개인이 다시 조율하게 한다. 이 지연의 순간, 감각은 더 이상 고정된 의미로 환원되지 않고, 관람자의 인식 속에서 새롭게 재조립된다. 그것이 바로 김그림의 회화가 감각의 분할에 사선으로 교차하는 방식이다.
-( 마포레이어스, 신진작가 x 비평가 1:1 매칭 프로젝트)